'시간'이라는 개념은 내게 독일철학자 하이데거와 함께 들어왔다. 그의 '존재'라는 용어는 상대적으로 알겠는 '존재자'에 비해 알수록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결국 돌고돌아 '청종(聽從)'으로 내가 가닿지 못하는 어떤 지점에 그 존재를 위치시키고 말았었다. 인간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존재자로 시간을 얻어서 펼쳐야하는 존재로의 여정에 위에서 또는 심층에서 내 의식 밖 어떤 절대자의 소리를 염두에 두고 살아야하는 나로 한계지었었다. 하지만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는 나를 그 한계로부터 꺼내어 회색의 또는 아주 엷은 푸르름의 공간에 '다소간 존재함'에 머물게 했다. 그의 글은 산문이지만 어떤 시(詩)보다도 더 시가 되어 내 마음을 저몄다. 아래에 인용된 그의 문장으로 나와 같은 지점에서 만나기를 바라며 ...
'반(反)시간성-방향 없이 날아가 버리는 시간에서 오는 감정'
'활동의 과잉이 일상을 지배하면서 인간의 삶에서 사색적 요소, 머무름의 능력은 완전히 실종되고 만다. 그 결과는 세계의 상실, 시간의 상실이다.'
'제때 죽을 수 없는 사람은 불시에 끝날 수밖에 없다....삶 자체를 적극적으로 구성해 가는 죽음, '완성하는 죽음'을 머릿 속에 그리고 있다.'
'낮의 조급성은 텅 빈 형식이 되어 밤을 지배한다.'
'신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이 시간의 주인이다. 피투성에서 해방된 인간은 다가올 미래를 계획한다.'
'시간은 지속성을 지닐 때, 서사적 긴장이나 심층적 긴장을 획득할 때, 깊이와 넓이를, 즉 공간을 확보할 때 향기를 내기시작한다.'
'더 빨리 살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결국 죽기도 더 빨리 죽고 만다. 삶을 더욱 충만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들의 수가 아니라 지속성의 경험이다.'
'유영하는 듯 느긋한 방랑을, 그러니까 부유하는 시간의 향기를 발견할 것인가?'
'삶이란 연명, 혹은 단순한 깨어 있음 이상의 것이다.'
'시간에 대한 잃어버린 주권'
'존재는 자기 안에서 진동하며 "동일한 것"속에 머물러 있다.'
'"진리의 인식을 향한 노력"은 "자랑스러운 한가로움"에 속한다.'
'행동 없는 사색적 삶은 공허하고 사색 없는 행동적 삶은 맹목이다.'
'사색적 에포케'
NO. | 제 목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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