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나는 차와 함께 배를 타고 떠나는 제주 여행 일정을 가졌다. 며칠간의 시간이 내게 주어지느냐에 따라 적절한 책을 챙겨가는 내 여행 버릇은 꽤 오래된 듯하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내 가방 한 켠에 자리한 책은 아래 '거짓의 사람들'이었다. 여행 직전 '장산범' 영화를 우연히 보고 온 둘째 아들과 나는 제주 사려니 숲길에서 또 한라산 1100고지에서 비슷한 느낌을 나눴다. 그것은 이번 여행 내내 돌발 폭우와 햇빛이 교차하는 날씨 탓에, 더욱 현실과 유리되어 어느 곳에 멈춰지는 물리적, 심리적 고립의 순간들이라 할 수 있다.
정신과 의사이며 심리싱담자인 저자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할 길'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아래 저술은 일반 심리 상담의 영역을 넘어 종교로 상담을 확대하는 그의 사유 모습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즉 정신과 의사로서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던 몇 케이스를 섬세히 다루며 결국 '악'이라는 요소를 전제해야만 했던 치료자로서의 고심을 다룬다. 하지만 그 '악'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뿔이 나거나 빨간 눈을 가진 모습이 아니라는 것에 주요점이 있다. 오히려 아주 선한 부모님이나 자녀, 배우자의 모습으로 아주 평범하게 우리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본인은 자기 자신의 자기답지 않은 어떤 힘에 이끌려 자기를 상실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르치시즘 즉 자기애에 너무도 깊이 빠져들어 자기 밖에서 나를 관조하는 성찰은 거의 시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vil'은 성찰의 맑은 거울로 끊임없이 반사해야 비로소 'live'로 바뀌는데...그래서 나도 모르게 '악의 숙주'로 살고 있을지 모르는 '나 알아차림'은 쉬운 탈출구만 의존하는 삶이 아닌 매우 시급한 '영혼의 전쟁'이 될 것이다.